무계획이라도 휴가를 보내고 싶어
11월 22일 오전 11시 50분 비행기를 타고 혼자서 해외 여행을 떠났다. 구체적인 여행 내용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뭐가 맛있고 어떤 지역인지 정도만 알고 회사 휴가를 써서 3박 4일로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홋카이도 하면 추운 날씨와 함께 펑펑 내리는 눈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짐은 최대한 가볍게 하고 몸만 가볍게 갔다오고 싶은 나는 눈은 오지 않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비히로 공항 도착
오비히로 공항은,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보다 크기가 작아보였다. 돌아오는 날에 전체적으로 주욱 둘러봤었지만 역시 살면서 이렇게 작은 공항은 처음.
도착하자마자 느낀건 지금은 홋카이도보다 서울이 더 추운 것 같다는 것. 그리고 공기는 더 쾌적하고 햇빛은 더 강하고, 여름에 오나 겨울에 오나 한국보다는 날씨가 훨씬 좋은 것 같긴 하다.
조금 조심해야하는건, 공항에서 오비히로 시내까지 가려면 셔틀버스를 타야하는데 셔틀버스는 보통 1시간 간격인 것 같고 현금 말고 안 받는다. 천엔정도 가격에 40분이면 시내까지 가는데, “헤헤 공항 가서 환전해야지!” 라는 생각에 그냥 오면 처음부터 큰일 날 수 있다.
분명 난 한 3시 반쯤에 오비히로에 도착했는데, 해가 거의 다 지고 있었다. 마치 저녁에 도착한 느낌이 들어서, 비행기 3시간 타고왔을 뿐인데 곧 자야할 것 같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4일정도 있으면서 느낀건데 여기는 초겨울이여도 한 4시정도 되면 한국의 10시정도의 어두움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여기 사람들은 그래서 아… 뭔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그런 삶을 살지 않을까 싶었는데, 현지인 얘기 들어보니까 다들 늦게까지 술마셔서 그러진 않는다고 하더라.
뒤지게 먼 게스트하우스
홋카이도는 대한민국 크기의 80%정도의 아주 거대한 크기의 섬(?)이다. 지도에서 봤을 때에는 내가 예약한 게스트하우스 정도는 한 15분정도 걸으면 도착할 것 같았다.
뭔가 그려진 화살표 느낌으로 금방 가겠지 싶었지만, 한 10분 걸으니까 사람도 없고 건물도 없더라. 지도에서는 블록으로 되어있고 여기도 조금 도시라고 하길래 마을 구경도 하면서 가려고했는데, 중간 쯤 되니까 건물은 1도 없고 차들도 쌩쌩 달리고 동물들이 막 나옴. 그리고 실제로 저기까지 걸어가는데 40분 걸림.
이건 홋카이도에만 있는 세이코마트. 여기 음식들이 줜맛이다.
들어가자마자 나이가 있으신 할머니께서 반갑게 마주해주셨다. “니혼고 다이죠부?” 한국인은 오랜만이라고 해주시고 일본어 왤캐 잘하냐고 엄청 칭찬해주셨다. 실제로 내가 일본어를 잘하는 편은 아니나, 그냥 좀 자신감 있게 말하면, 여기 현지인 사람들은 꼭 이런식으로 칭찬해줬다. 다들 친절하고 상냥하구나 싶었다.
방은 엄청 따뜻하고… 2인실인데 나 혼자여서 진짜 편하게 썼다.
편의점에서 알리오올리오에 훈제 닭다리살을 올린걸 팔고 있길래 바나나 크레페랑 같이 사서 와서 먹었는데 진짜 이거 한국에서 팔면 좋겠다. (3번째 사진임) 엄청 맛있었음.
막 먹고 기분 좋게 한 10분정도 뻗었나?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들어와서 20분뒤에 자기가 시내에 갈건데 태워줄까? 라고 해서 다시 돌아올 때는 어떻게 하지? 싶은 걱정은 일단 집어치우고 아저씨를 따라서 시내로 가는 아저씨의 차를 탔다.
아까 반갑게 마주해주신 할머니도 그 아저씨가 할머니댁에 내려주고 나도 시내 구경 시켜주면서 여긴 뭐를 팔고~ 저긴 온천이고~ 이런 식으로 친절하게 오비히로 시내를 소개해주셨다.
그리고 일본어는 애니메이션으로 알게 되었다고 하니까 몇분간 계속 애니메이션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귀멸의 칼날은 역시 한국인도 좋아하는구나~ 이런 시시한 얘기들의 연속이였지만 한국에서도 그정도로 애니메이션 좋아하는구나~ 이런식의 반응을 계속 해주셔서 어색하지 않게 시내에 도착하게 되었다.
근데 막상 내렸는데 뭐하지 싶었음. 방금 개맛있는 편의점 파스타도 먹었고, 술 마시면 첫날부터 집에 잘 갈수 있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진짜 시내를 엄청 돌아다니면서 눈에 분위기를 새겼다.
그러다가 관광객들이 자주 가는 노포들이 모여있는 곳을 발견했다. 그런데 여기 뭐 공항에서 온사람들이 다 여기로 온 것 같더라. 시내 돌아다니는데 한국어 하나도 안들리다가 여기 오니까 한국사람들이 좀 있었음. 그래서 뭔가 흠… 좀 배불러도 여기 현지인들이 가는 맛집을 가보자 싶어서, 부타동 집을 찾게 되었다.
부타동 + 모둠튀김
이게 2400엔인가 했음. 홋카이도는 물가가 비싸다고 했는데, 여기 말고도 실제로 전반적으로 다른 곳 보다는 비싸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부타동은 이번 여행에서 2번 먹었는데, 첫 번째로 먹은 이 부타동은 내가 배가 많이 불러서 그런지 그냥… “음! 돼지고기 간장 덮밥!” 이런 느낌으로 끝났고, 이 집에는 신기하게 부모님이랑 아이가 많이 오는 것 같았다.
가격대비 아쉽지만 평범하게 먹고 나와서 사과사탕 자판기같은게 바로 앞에 있길래, 못참고 사버렸다. 우리나라는 탕후루가 3000원이였던 것 같은데, 사과에 그냥 설탕 막 칠한게 780엔이나 했다. 그리고 맛도 그렇게 있지도 않다. 탕후루 안 좋아하긴 하는데, 탕후루가 훨 맛있는거같다. 먹다가 남기고 게하 쓰레기통에다가 냅다 버렸다.
졸라 먹고 걷고 씻고 누우니까 10시가 되었다. 뭔가 특별한걸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여기 진짜 5시만 되면 어디서 막 곰이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이기도 하고 할 것도 없으니 그냥 자기로 했다. 사실 오는 길에 현지인들만 가는 유명한 온천이 하나 있었다.
Oberiberi hot spring Suikōen (지도 열기)
여기인데 난 20살 때 쓸데없이 팔에 문신을 해서, 실제 현지인들이 가는 온천같은데는 일본에서 못간다고 하더라. 그게 아쉬워서 그냥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서 누운건데, 솔직히 오늘 하루가 나쁘지는 않았다. 그런데 마냥 좋지도 않았다.
계획 없이 여행을 다닐거면 어딘가를 더 쑤시면서 돌아다녀야하나?
오늘 먹은게 맛없지는 않았지만… 뭔가 이렇게 평범하게 먹고 돌아다니고 자고 이런걸 3일을 더 해야하는거면 막 아쉽다기보다는 그냥 진짜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에 걱정이 조금 쌓인 상태로 나는 잠에 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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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히로 사진 폴더 — GitHub